선견지 마을

선견지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는 충주석씨(忠州石氏) 집성촌이다.
기세리는 용연사(龍淵寺)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옥연지(玉淵池)가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충주인
인산공석언우(石彦佑)가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한 이래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주석씨들의 대구 지역 최초 거주지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기세골에는 30여 가구의 충주 석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 선비의
    덕을 배우는 곳

    소계 석재준 선생의 영정
  • 기세마을(선비마을)

    마을에는 충주석씨 입향조 인산공석언우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건립한 인산당(仁山堂)이라는 재실이 있고, 인산공의 후손이자 학자인 소계(小溪)석재준(石載俊)[1866~1945]의 제자들이 유지를 받들고자 1923년에 건립한 소계정(小溪亭)이 있다.
    석재준 선생은 기세리에 학당을 열고 오랑캐의 풍속에 물들지 않고 고유의 풍속을 지키는 선비 정신을 일깨우는 데 힘썼다. 이에 제자들이 함영계를 조직하여 재물을 모은 뒤 소계의 호를 딴 소계정을 건립하였다.

    기세리의 옥연지를 따라 용연사로 가는 길에는 벚꽃길과 송해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발길을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3㎞ 구간의 송해 둘레길, 옥연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제방 옆 계곡을 이어주는 다리, 대형 물레방아, 백세교와 백세정 등이 조성되어 있다.

    소계 석재준

    소계정은 석재준(石載俊, 1866-1945)을 기리기 위하여 1923년 제자들이 함영계(含英契)를 결성하여 지은 것으로, 편액(扁額)은 석재준의 호를 따라 ‘소계정’이라 하였다. 소계정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의 달도산 아래에 서향으로 옥연지를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다.

    석재준 선생 의 자는 경수(慶秀)이고 소계는 선생의 호이다. 선생의 시조(始組)는 고려 상장군 예성군(藥城君) 석린(石賊)이다. 이로 인하여 예성(藥城)은 지금의 충주(忠州)의 옛 이름으로 석씨의 본관이 되었다. 그 후 5대손인 석양선(石良善)은 최한기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이성계의 이모로 일찍 돌아가신 이성계의 어머니를 대신하여 양육하였다. 후에 석양선은 홍양부원군(洪陽府院君)으로 추증되었다. 그의 손자 석여명(石汝明)은 조선이 들어선 후에 가선대부 검교 한성윤 집현전제학에 제수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이유로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충주 차의산 회문동으로 귀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후대의 석성옥(石成玉) 은 이조참의의 벼슬에 있었으나 연산군의 폭정이 시작되자 사임하고 남쪽으로 내려가 밀양 청천동에서 은거하였다. 그의 오대손 석언우(石度依)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나가 싸웠고, 전쟁이 끝나자 비슬산 인수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였다. 이때부터 자손들이 기세리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의 아들 석운상(石雲鮮)은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보고 서울에서의 공부를 접고 들아와 은거하였다. 선생의 부친은 지지당 석치규(石致奎)이며 선생의 어머니는 파평 윤씨이다.

기세리 밥상협동조합